서울 보광동 연립주택 반지하 작업실에서 주문받은 가구 디자인을 하는 박길종씨.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 대부분은 기증받거나, 혹은 주워온 것이다. 박씨는 이를 번듯한 작품으로 재창조한다. [안성식 기자]
이름은 상가(商街)인데 점포는 손바닥만 하다. 상점들이 죽 늘어선 상가가 아니라 능력 갖춘 일손이 푸짐한 가게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상가(常家)란다.
무엇을 주문하든 손님이 원하는 걸 100% 만족시켜준다는 ‘길종상가’다. 작지만 알뜰하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능력을 뽐낸다. 거래가 아니라 교감으로 일해서일까. 2010년 12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뒷골목에 간판을 내건 뒤 물건이면 물건, 일감이면 일감 모두 사용자의 호평을 받으며 성업 중이다. 인터넷(bellroad.1px.kr)에서 시작해 현장 이동형 상가로 발전한 이 발칙한 상상력의 가게를 찾았을 때 정작 주인은 “마음을 열어 취향을 조율할 뿐 실제 손이 하는 일은 별게 없다”고 느릿느릿 말했다.
길종상가 관리인인 박길종(31)씨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여문해’ 소장이자 목수이며 1인 인력사무소 직원이다. 명함에는 ‘박가공’이란 이름이 찍혀 있었는데 뭔가를 가공한다는 뜻과 가공의 인물이란 의미를 겸하고 있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발판으로 일어선 상인답다.
박씨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나가다 삶에는 그림 그리기보다 훨씬 해볼 만한 일이 많다는 걸 깨달은 뒤 전격 길종상가를 개업했다. 2009년 시급 5000원을 받으며 1년 여 쫓아다닌 목공 일이 바탕이 됐지만 정작 가게를 열자 그의 뜻이 좋다며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무한대 일터를 창조하는 중이다.
101호 한다 목공소, 203호 밝다 조명, 211호 꿰다 직물점, 502호 있다 만물상, 604호 간다 인력사무소, 701호 걷다 사진관이 현재까지 길종상가의 취급 품목이다. 그에게 일을 맡기는 이들은 알음알음 지인들로부터 이 독특한 가게의 솜씨와 마음씨를 듣고서 반해 찾아왔다는 소감을 털어놓는다.
집에서 쓰던 가구를 손질해 달라고 그에게 맡기면 우선 그 의자나 책장이 놓일 곳을 찾아가 그 공간을 연구하고 쓸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제작 기간은 오래 걸리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구가 탄생한다. 엄마가 쓸 식탁보 하나를 짜도 그가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주로 언제인지 뭘 즐겨 먹는지 알아본다. 도배를 부탁하면 집주인이 어떤 꿈을 꾸는지를 묻고, 시들시들한 화분을 맡기면 싱싱하게 되살려놓는다.
“기존 사회 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직종을 만들고 싶어요. 너무 규격화하고 진부하다 못해 타락한 일을 원시시대의 그 시발점으로 돌려주자는 거죠. 노동의 신성함 같은 거창한 건 아니고요, 오로지 돈에 매몰된 우리 삶에서 물질적 수입보다 정신적 수입의 가치를 높여보자는 공감대 형성이랄까요.”
박씨는 “의외로 대기업이나 거대 조직의 구성원으로 묶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했다. 길종상가는 그런 욕구를 지닌 이들과 연대를 이뤄나가는 모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표현하는 단어 하나도 조심조심 신중하게 고른다.
“대안공간도 아니고 공동체도 아닙니다. 예술도 아니고 작품도 아니죠. 쉽게 말해서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재미있는 시도랄까요. 그악스럽게 뛰어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다는 걸 우리 식으로 해보는 거죠. 특히 한국식 교육제도에 강력한 의구심을 던지며 ‘학교가 문제다’라고 발언할 수 있는 결과를 낳고 싶어요.”
길종상가는 이달 말까지 그 동안 애용해준 단골 손님들을 위해 연말정산의 시간을 마련해 일종의 환급 행사를 열고 있다. 뭘 돌려주는지 궁금한 분들은 홈페이지에 들러보시길….
‘길종상가’ 창업 비용은 …
